나는 조선사람입니다 (I AM FROM CHOSUN)

김철민 1200


일본은 차별하고 한국은 외면했지만, 한 번도 조국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
식민과 분단의 증언자, 재일조선인 76년 역사를 오롯하게 담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켜온 사람들의 숭고한 기록!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시대가 외면하고 이념이 가두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 재일조선인 76년의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식민과 분단의 증언자이며, 여전히 일본과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차별받고 외면받고 있는 1세부터 4세까지 다양한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내밀한 상처를 함께 목도하고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해방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일본에 남게 된 그들은 ‘조선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재일조선인 1세대는 무엇보다 후손들의 민족성 고양을 가장 중시했다. 우리 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고, 조선학교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식민 지배 35년간의 뼈아픈 역사를 지나자마자, 그들이 맞닥뜨린 비극은 남과 북의 분단과 이념 대립의 냉혹한 시간이었다. 재일조선인 사회는 대한민국(남한)을 지지하는 재일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로 크게 양분되었다. 이승만 정권을 지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냉전’의 격화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간 신경전이 극렬했기에 남한은 ‘민단’만을 동포로 여겼고, 북과 교류하는 ‘총련’계는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철저히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내에 유학 온 민단의 청년들을 체제 강화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암약해 온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한 1975년의 간첩조작사건이 바로 그것. 이들 130여 명의 희생자 중 재일조선인 2세인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이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한다. 조국이라 여긴 대한민국은 단지 조국을 그리워했을 뿐인 꽃다운 청년들에게 일생의 상처를 안겼다. 하지만 강종헌 씨는 13년 수감 후 가석방으로 출소하자 두 가지 삶의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것.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식민과 분단의 증언자로 비극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숭고하게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작품이다. 늘 남과 북의 양자택일을 강요받던 그들은 당연하게도 남도 북도 모두가 내 조국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역사에 의해 남겨진 짙은 상처도 미소로 승화하는 이들의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국가폭력에 의해 삶의 큰 귀퉁이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아픔을 뒤로한 채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통해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전하는 고요하고도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