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덜강에서

전비담 1117

더덜강에서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북쪽에서 흘러오는 강의 노래를 들었다

 

남녘만 북녘이 그리운 줄 알았다

그리움은 북으로 흘러가는 것인 줄 알았다


내 어머니 고향 황해도는

북쪽 땅으로 올라가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황해도는 남쪽 땅으로 흘러내리며

삐쭉빼쭉 솟아난 가시철망의 편견을 걷어 올렸다

 

강은 흐르며 남북의 강변을 골고루 적시는데

우리는 아직도 메마른 분단이다

 

북쪽으로 못가고 눈 감은 내 할머니

남쪽으로 못오고 눈 감은 네 할아버지

차디찬 묘비들 서성이는 여기는

 

월남자는 남에서 내고향 북쪽 땅을 그리는

월북자는 북에서 내고향 남쪽 땅을 그리는

 

북의 실향 남의 실향 모두

다함께 넋이 나간 여기는 한반도

아직도 분단이다


너무 오래 그리다

하나 둘 늙어죽는 분단

할아버지 할머니도 죽고 어머니 아버지도 죽어가는

그리움의 중병을 대를 이어 앓고 있는


강대 제국들의 틈사이에서

한 세기 다 되도록 등이 휘어터지는

아직도 몹쓸 분단이다

 

4.27판문점선언도

무기매매상들의 희망고문 정치게임일 뿐

선제타격 전쟁공포조장 분단적폐 권력에

도로 정권을 반납한 말짱 도루묵

 

끝이 안 보이는

멍청한 철조망이다

 

조그만 반도 땅이 가루가루 갈라지고 찢어진 여기는

귀를 바짝 세우고 평화의 발표만 기다리며 

애가 바짝바짝 타는 땅

 

뒤꿈치 들고 서성이던

내 할아버지할머니의 비석도 비쩍 말라가고

어머니의 등은 갈수록 휘어터진다


강물도 어쩔 줄을 몰라 너덜너덜 앓고 있는

여기는 더덜강이다

 

*더덜강: 임진강의 다른 이름